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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종교

설교의 과도한 예화가 말씀의 본질을 가리는 이유

by wondolab 2026. 3. 18.

종종 설교 중에 등장하는 과거의 경험담이나 구체적인 예시들은 누군가에게는 감동일지 모르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요소가 된다.

특히 전쟁 이후의 가난이나 시장통에서의 고생담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면 더욱 그렇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게 당시의 처참함을 기반으로 한 예화는 아무리 상세히 설명해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흑백 사진 같은 남의 일일 뿐이다.

 

공감을 강요받는 느낌이 들수록 마음은 본문 말씀이 아닌, '나와는 상관없는 시대의 이야기'로 멀어진다. 소위 말하는 'T' 성향의 청중에게는 이런 서사가 논리적인 깨달음보다는 정서적인 피로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설교의 도입부에서 흔히 던지는 "요즘 참 힘드시죠?"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평온하고 감사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당연히 힘들 것을 전제로 깔고 위로를 건네면 그때부터 설교의 방향은 나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청중의 현재 상태를 특정한 감정으로 한정 짓는 말은,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교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한다. 누군가는 기쁨의 정점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러 왔을 수도 있는데, 설교자가 임의로 설정한 '고난'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야 하는 상황은 소통의 단절을 불러온다.

 

결국 설교자의 가장 큰 사명은 기록된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전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설교자가 20%의 청중에게만 해당되는 구체적이고 사적인 예화에 매몰될 때, 나머지 80%는 하나님이 주시는 보편적인 은혜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예화는 말씀의 이해를 돕는 도구여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적인 동요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보다는, 텍스트가 가진 본연의 의미를 담백하게 풀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다.

 

말씀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굳이 나의 경험이나 타인의 불행을 빌려와 살을 붙이지 않아도, 담담하게 선포되는 진리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위로받고 변화할 수 있다. 설교자의 역할은 청중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라는 본질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설명'까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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