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들이 주는 특유의 차분함이 좋다. 화려한 쇼핑몰의 조명보다 먼지가 살짝 내려앉은 골동품의 질감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번에 발길이 닿은 곳은 서울의 숨은 보물창고 같은 답십리 고미술상가다.
1980년대 청계천과 아현동 일대의 고미술 상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며 형성된 이곳은, 지금은 국내 최대 규모의 고미술 단지로 자리 잡았다. 인사동이 관광객을 위한 정제된 느낌이라면, 답십리는 조금 더 투박하고 생생한 삶의 궤적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상가 입구에 들어서면 공기부터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세월을 머금은 나무 냄새와 쇠붙이의 서늘한 기운이 섞여 있다. 단지는 크게 2, 3, 5, 6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지도를 보며 걷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4동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상가 중간에 꽤 큰 규모의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아무래도 과거에 4동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올린 모양이다. 사라진 번호만큼이나 이곳의 시간도 층층이 쌓여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가장 먼저 발을 들인 2동과 3동은 규모가 꽤 크다. 통로 양옆으로 상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장신구나 그릇부터 거실 한 켠을 차지할 법한 묵직한 고가구들이 주를 이룬다.

빛바랜 놋그릇에 닿는 오후의 햇살이 따뜻하다. 누군가의 찬장에 놓여 있었을 이 물건들이 어떤 손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발길을 옮겨 5동과 6동으로 향했다. 이곳은 2, 3동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기자기한 소품보다는 도자기류가 주를 이루는데, 특히 중국에서 건너온 기물들이 많이 보였다.


넓지는 않지만, 도자기 특유의 매끄러운 곡선과 은은한 발색을 즐기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답십리까지 왔다면 빼놓지 말고 꼭 한 번 들러보길 권한다.

과거의 골동품 시장이라고 하면 왠지 무뚝뚝한 상인이나 삼엄한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요즘의 답십리는 다르다. 상인들은 의외로 매우 친절하다. 지나갈 때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주시는데, 강요 섞인 호객행위가 전혀 없어 마음이 편하다. 덕분에 궁금한 것이 생기면 부담 없이 물어볼 수 있었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독이 되는 이곳에서 상인들의 친절함은 큰 도움이 된다.


아직 제대로 된 골동품을 고르는 안목은 부족하다. 그래서 벌써 며칠째 이곳을 출석하듯 방문하고 있다. 물건을 덥석 사기보다는 상인들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공부가 된다.


몇백 년 전 민초들이 쓰던 투박한 도자기부터 근대식 가구, 심지어 중국 사찰이나 저택에서 뜯어온 듯한 커다란 문짝까지. 종류는 방대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 보니 골동품만의 일정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시작하니 슬슬 욕심이 생긴다. 조만간 조금 더 공부를 마친 뒤, 내 공간에 어울릴만한 기물 한두 개를 정식으로 들여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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